한국 기업 '흥망성쇠'…끝없는 혁신만이 선진국 문턱 넘는 비결

입력 2017-04-14 19:45  

CEO를 위한 경영학 <50·끝> - 한국 기업 경쟁력의 과거·현재·미래

경공업→중화학공업 전환 성공…80년대 TV·D램·자동차 수출 신화
90년대 중국 기업들 무서운 추격…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 추월
혁신 소홀해 중진국 함정 빠져 4차 산업혁명, 위기이자 기회

정규석 <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




개인처럼 국가도 부국(富國)을 추구한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부국이 되는 길은 원재료 공급지이자 2, 3차 상품 수요지인 식민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는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을 유발해 1,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2차대전 말에 핵폭탄 등 대량살상 무기가 발명됐다. 3차대전이 일어나면 공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공존공영의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가 출발했다. 2차대전 이후에는 상품의 경쟁력만 있으면 어느 국가에나 팔 수 있고, 달러만 있으면 어디서든 원자재나 상품을 살 수 있게 됐다. 상품 경쟁력이 부국의 핵심 요소가 되며 기술우위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2차대전 후 1960년께까지는 이념경쟁으로 인해 자본주의 국가 간에는 서로 도와주며 발전하는 우호적 경쟁시대로서 고품질·고가격 시장은 미국과 유럽 상품이, 저품질·저가격 시장은 일본 상품이 차지했다. 2차대전 후 저품질로 시작한 일본 상품은 미국의 품질관리 지식을 받아들인 결과 60년대에는 중급의 품질을 갖추고 임금도 오르면서 중품질·중가격 시장에 진입했다. 1960년께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4마리 용’이 저임금을 활용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비어 있던 저품질·저가격 시장에 신규 진입했다.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경쟁자에게 시장은 넓고 할 일은 많았던 ‘경쟁적 공존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60년대에 경공업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리다가 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기술이 부족해 품질은 떨어졌고, 경제적 생산규모에 못 미쳐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도 못해 중화학공업 제품의 수출은 부진하기만 했다. 이에 따라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고 1978년 제2차 오일쇼크와 함께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80년대는 공존의 시대가 끝나고 경쟁국들이 국운을 다투는 경제전쟁시대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 후반 일본 제품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서구경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제2차 오일쇼크와 함께 미국에서 소형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 자동차나 전자제품이 구미 제품의 품질을 능가한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일본 제품은 중가격·고품질로 오늘날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가 탁월해 글로벌 시장을 휩쓸 정도였다. 이에 대한 유럽의 응전은 유럽연합(EU)이란 국가통합으로 나타났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시너지 창출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미국의 응전은 그동안 다른 나라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공정했던 무역을 공정한 자유무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으로 시작해 세계무역기구(WTO)로까지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 여파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엔화 가치를 절상해 일본 제품의 가격을 올림으로써 가성비를 적절한 수준으로 낮췄고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벤치마킹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본 경영방식 배우기 열풍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일본식 경영의 핵심이 ‘전원참여형 지속적 개선’을 추구하는 전사적품질경영(TQM: total quality management)이란 점이 드러나면서 급기야는 경영품질상인 미국 맬컴볼드리지품질상과 EU의 유럽품질상 제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은 정부 주도로 추진한 중화학공업이 기술 부족으로 인해 80년대 초반까지 고전하며 좌절을 맛봤고 중진국 수준에서 성장을 멈춘 중남미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부상하기도 했다. 반면 자율적 시장경제 체제였던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비교적 순탄하게 중품질·중가격 위치로 이동하며 중진국 반열에 올랐다. 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우리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 품질 향상, 생산성 향상의 혁신을 이루며 성공신화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마그네틱 테이프, 컬러TV, 전자레인지, 메모리반도체, 자동차 등은 한동안 우리 기업의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엔화 절상으로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우리 제품이 더욱 경쟁력을 발휘했다. 80년대 중반 우리 제품의 품질은 중품질이 됐으나, 80년대의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아서 비교적 높은 가성비를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상품은 글로벌 무대에 등장한 지 4반세기 만에 3류에서 2류로 올라섰고, 국가는 후진국에서 중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편, 80년대 4마리 용이 저품질·저가격 시장에서 중품질·중가격 시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비어 있는 저품질·저가격 시장에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 또한 앞서간 4마리 용과 같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한다.

이후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무한경쟁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사회주의 체제가 성장의 한계에 맞닥뜨려 1990년을 전후해 붕괴되고 시장경제체제로 편입되면서부터다. 특히 초저가 가격경쟁으로 무장한 중국의 등장은 기존 경쟁구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많은 공산·사회주의 국가 중에 중국이 독보적으로 경쟁력을 발휘한 것은 전적으로 중국 위안화환율 덕으로 볼 수 있다. 타국과의 무역을 기피하던 공산주의 국가는 환율을 작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데 위안화가 상당히 저평가된 상태로 세계 무역체제에 편입됐다는 것은 중국에 크나큰 행운이었다. 저평가된 위안화 가치를 무기로 초저가 상품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높은 가성비를 갖게 된 중국 상품의 등장은 저품질·저가격 시장은 물론 중품질·중가격 시장에도 충격을 미쳤다. 90년에는 우리의 주력시장이던 미국 시장에서 한·중 두 나라의 시장점유율이 역전되며 우리 상품은 경쟁력의 위기를 맞게 된다. 여기에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로 선진기업의 브랜드 및 기술과 후진국의 저임금이 결합, 가격대별로 뚜렷하게 분할됐던 시장구조가 고품질·저가격 시장으로 수렴되면서 미래에는 세계 일류만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가 던져졌다. 반면 1987년 6·29 이후 급격한 임금 인상에 의한 원가 상승으로 우리 기업들은 고품질의 선진기업과 저가격의 중국 상품 사이에 낀 샌드위치적 상황이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된다. 많은 기업이 이런 국내외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무너지고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또 다른 기업들이 치열한 혁신을 통해 세계 일류 수준으로 도약함으로써 오늘날 한국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르게 됐다.

무한경쟁, 특히 중국의 추격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빠른 추격자였던 우리가 선도하기 힘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고 있고, 기존에 우리가 강했던 산업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과거 위기에서도 그러했듯이 우리가 기댈 곳은 우리 기업들의 끊임없는 혁신과 성공 스토리밖에 없다.

■ 경제도약 위한 신의 한 수

1960년대 경공업 육성정책이 성공한 것과 달리 1970년대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수출에 실패해 가동률이 떨어지고 기업 부실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 뿌린 씨앗이 발아해 1980년대 한국을 중진국으로 이끌었고, 오늘날 반세기 만에 선진국 진입을 앞두게 만들었으니 ‘신의 한 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보다 인구가 30배나 많은 거대 시장이란 강점을 가진 중국의 거센 추격 앞에서 우리의 경쟁우위 요인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중국보다 경제개발을 17년 정도 일찍 시작한 결과 그나마 우위를 지키며 오늘날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행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제 도약을 위해 또 한 번 신의 한 수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규석 <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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